튀니지의 친구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안또니오 네그리
2011년 3월 23일
A에게
첫 편지를 쓸 때 이미 ‘인권’의 이름으로 다국적군의 공중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권을 지키기는커녕, 정말로 한심한 살육이었습니다. 당신은 이것을 ‘반혁명의 개시’라고 말했는데, 말 그대로였습니다. 리비아는 아랍혁명의 약점입니다. 즉 카다피의 어리석은 행동에 책임을 물어, 언제라도 공격을 개시할 수 있었습니다. 독재자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이 허락된다고 누구나 찬성했습니다……. 카다피는 확실히 독재자지만, 당신도 언급했듯이 사르코지, 카메론, 베를루스코니, 그리고 (축제의 마지막에) 오바바는 독재자는 아니더라도, 아랍혁명을 관리하려는, 즉 무해한 것으로 하려는 의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에는 법적인 전례가 있으며, 그것은 키레나이카(Cyrenaica)의 봉기를 지원하는 ‘인도적 개입’이라고 간주되었습니다. 즉 제국주의적‧신식민지주의적인 행동이 아닌, 인권을 존중한 우호적‧민주주의적인 행동이라고. 그럼에도 우리들의 정의(定義)로는 ‘제국적’인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괴물을 공격하여 새로운 관리 규칙을 구축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혁명을 관리‧억압하는 규칙은 나라에 따라 다릅니다. 그리고 당신이 주장하듯이, 이 혁명은 관리할 수 없겠죠. 다중이 봉기할 때는 다중 자신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자신 속에 독재자의 흔적이 있다면, 그것을 제거하는 것도 다중 자신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당신의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A씨, 아십니까? 리비아에서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탈리아에서는 국가통일운동 150주년 의식이 거행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있는 곳의 사건과 리소르지멘토[이탈리아국가통일운동]―장대한 운동임과 동시에 회색부분이 많다―의 사이에, 어느 정도 많은 유사점이 있는 것이죠. 실제로 서방 국가들은 당신들에게 무엇인가 리소르지멘토와 유사한 것을 선물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19세기 유럽처럼 ‘살쾡이’식으로 잘 연마된 혁명. 그 당시 ‘공화주의와 사회주의’라고 불리고 있었던 것을 타도하고, 자본의 확대와 축적을 관리운영하기 위해서 귀족계급과 산업마피아가 손을 잡고 움직였습니다. 동일한 모델을―약간 사팔뜨기적으로―오바마가 반복했습니다. 요컨대 당시 이탈리아에서 교황 피우스 9세(Pius IX)가 행한 것처럼, 아랍혁명의 돌을 던지면서 (약 1년 전에 카이로에서 지정학적 요소에 따라 조정된 “누구나가 베를린 시민이다”이라는 돌이었습니다만) 그것을 던졌던 손을 곧바로 숨겨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전에 식민지 지배를 행했던 국가들과 함께 관리통치의 수단을 잘 다듬어서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19세기가 아니라 21세기에 살고 있습니다. 명령을 내리는 것은 이제는 귀족계급과 현지 자본가가 아니라 이미 여러분들의 위대한 독재자와 단단하게 결부되어 있는 은행과 전지구적 자본입니다. 발전은 이제, 빈곤 속에서 초라한 자립을 강요당했던 국민과 국가의 고통스러운 노동에 의한 야만적인 축적이 아니라, 사회적 협동을 행하는 다중의 생산물인 것입니다. 해방되어야 하는 것은 사회적 협동과 ‘공통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이 아랍혁명은―당신이 말했듯이―정치적 혁명 이상으로, 무엇보다도 ‘사회적 혁명’입니다. 우리들은 독재자뿐만 아니라 어떤 주인도 바라지 않습니다. 아랍의 젊은이들인 다중이 품고 있는 커다란 희망은, 주인을 바꾸는 것이 아닌 주인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서방 국가들의 군사개입은 요컨대 이 희망을 방해하고, 정치 상황 불안을 조성하고, 사람들을 새로운 주인과 그 공모자를 향하게 하고, 민주주의 세력과 우리들 운동의 ‘공통적인 것’을 유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되지 않으면 근대적인 세속의 ‘제국적’ 세력이 기존의 식민지주의적 주인을, 과격파, 종교적 원리주의자, 그리고 독재자를 다시 귀환시키겠지요. 장대한 전략이 리비아에 대한 개입과 더불어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A씨, 우리에게는 이 방해의 시도, 즉 제국적 반작용은 이미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 해결불가능한 위기의 시대, 해저의 플레이트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세력도 요동하는 시대에, 지배자인 다국적기업의 주인들은 이제는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아랍혁명의 관리통제를 어떻게 조직할지 통일적인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버둥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터키와 독일은 나토(NATO)를 길을 잃게 만들고, 이스라엘은 오바마의 노선을 뒤집고, (대서양에서 페르시아만까지의) 군주국가는 군주국가답게 행동하여 프랑스공화국에게 즉각적인 억압장치를 취하게 하고, 알제리군은 스탈린도 부러워할 방식으로 폭력을 계속해서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랍혁명은 지속되고 있습니다―모나코와 알제리의 재를 불어 날려 버리고, 튀니지로 숨을 돌리고, 이집트에서는 이미 괴로워하고 번민하며 (거기서는 운동을 분쇄하기 위해 군대와 무슬림형제단이 손을 잡았다) 요르단과 시리아에서 투쟁하고, 바레인과 예멘에서는 압살당해 인터넷으로 도주하여 페르시아만 연안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그 한편으로 ‘전지구적 다자주의’의 새로운 전망 속에는, 아직 아랍혁명의 장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조락(凋落)’으로부터 생겨난 전지구적 지정학적 재편 속에서, 최종적으로 나타난 것은 라틴아메리카였습니다. 그런데 군주의 고정수입 대신에 프롤레타리아의 투쟁과 임금인상 요구, 다중의 자유로운 재생산이라는 ‘독립변수’가 있을 때에, 아랍의 석유공급자들을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당신은 “이 혁명이 유럽을 각성시켜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도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나아가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새로운 노동력이 그 공간에서 활동할 때, 지중해 남쪽 해안의 토지와 북쪽 해안의 토지는 아랍의 젊은이들에게도 유럽의 젊은이들에게도 공유된다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이 운동은 ‘제국’과 독재자에 대한 투쟁의 일부이며, 아랍혁명으로 조직되는 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라고도 덧붙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동의합니다. 당신이 장대한 메시나 해협대교를 매우 칭찬하고, 시칠리아와 튀니지를 연결하는 터널에 대하여 열렬히 말할 때. 그리하여 쌍방향적인 왕래가 용이하게 되어,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모든 내셔널리즘과 주인들에 대한 건강한 증오를 서로 전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들이 있는 곳에서 평화주의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당신에게 전했을 때, (코소보와 이라크전쟁에 반대했을 때와 비교하면 매우 작은 운동이었습니다만) 당신은 미소로―웃어넘겼다고 하지 않는다면―답했습니다. 인도주의적 말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지금, 평화주의자들은 정말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노동시장을 확대하고, 재생산의 새로운 공평한 질서를 고안하는 것이며, 노동 포스트에서 석유의 지불을 하는 것이다 라고. 따라서 평화주의는 당신들의 정책을 지원하고, 아랍사회혁명에 물질적으로 기여하는 것을 통해서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걸려 있는 것은 미래의 비축, 지중해를 횡단하는 노동의 조직화와 분담, 에너지, 막대한 자금, 그리고 아마 세계 권력의 주요한 부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그런 문제들을 회피한다면―리비아 전쟁은 장기화되어 광신적인 것으로 되며, 아랍의 다른 국민을 끌어들이게 되어 최종적으로는 오직 폐허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리비아에도 서방 국가들에도, 확실히 승자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일방주의 시대 이후, 이 격동의 시대, 미국과 유럽의 제국적 정책이 조락하는 가운데, 그리고 나토NATO가 약체화되는 가운데 유일한 출구는 다시 한 번 ‘계급투쟁’을 새롭게 요동케 하는 것입니다―아랍 노동자와 유럽 노동자를 한 데 합쳐. 경계를 돌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당신도 말했듯이, 개량주의적 좌파를 책임의 무게와 배신의 수치심으로 짓밟는 일이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부의 토대로서의 공통적인 것’을 확인하면서 국경을 횡단하고, 생산방법의 형태를 변혁하는 정치프로그램을 급히 추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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