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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讀書/네그리2011/09/22 14:23

튀니지의 친구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안또니오 네그리

 

이 글의 원본은 'Secinda lettera adun amico tanisno'라는 제목의 이탈리아본이다. 現代思想20119월호에서 하시라모토 모토히코(柱本元彦, 이탈리아문학)チュニジのへの第二手紙라는 제목의 일어본으로 번역하였다. 이 번역문은 이 일어본을 저본으로 삼았다.(참고로 초역이며, 중역인 탓에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더러 있다.)

 

 

2011323

 

A에게

 

첫 편지를 쓸 때 이미 인권의 이름으로 다국적군의 공중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권을 지키기는커녕, 정말로 한심한 살육이었습니다. 당신은 이것을 반혁명의 개시라고 말했는데, 말 그대로였습니다. 리비아는 아랍혁명의 약점입니다. 즉 카다피의 어리석은 행동에 책임을 물어, 언제라도 공격을 개시할 수 있었습니다. 독재자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이 허락된다고 누구나 찬성했습니다……. 카다피는 확실히 독재자지만, 당신도 언급했듯이 사르코지, 카메론, 베를루스코니, 그리고 (축제의 마지막에) 오바바는 독재자는 아니더라도, 아랍혁명을 관리하려는, 즉 무해한 것으로 하려는 의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에는 법적인 전례가 있으며, 그것은 키레나이카(Cyrenaica)의 봉기를 지원하는 인도적 개입이라고 간주되었습니다. 즉 제국주의적신식민지주의적인 행동이 아닌, 인권을 존중한 우호적민주주의적인 행동이라고. 그럼에도 우리들의 정의(定義)로는 제국적인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괴물을 공격하여 새로운 관리 규칙을 구축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혁명을 관리억압하는 규칙은 나라에 따라 다릅니다. 그리고 당신이 주장하듯이, 이 혁명은 관리할 수 없겠죠. 다중이 봉기할 때는 다중 자신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자신 속에 독재자의 흔적이 있다면, 그것을 제거하는 것도 다중 자신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당신의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A, 아십니까? 리비아에서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탈리아에서는 국가통일운동 150주년 의식이 거행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있는 곳의 사건과 리소르지멘토[이탈리아국가통일운동]장대한 운동임과 동시에 회색부분이 많다의 사이에, 어느 정도 많은 유사점이 있는 것이죠. 실제로 서방 국가들은 당신들에게 무엇인가 리소르지멘토와 유사한 것을 선물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19세기 유럽처럼 살쾡이식으로 잘 연마된 혁명. 그 당시 공화주의와 사회주의라고 불리고 있었던 것을 타도하고, 자본의 확대와 축적을 관리운영하기 위해서 귀족계급과 산업마피아가 손을 잡고 움직였습니다. 동일한 모델을약간 사팔뜨기적으로오바마가 반복했습니다. 요컨대 당시 이탈리아에서 교황 피우스 9(Pius IX)가 행한 것처럼, 아랍혁명의 돌을 던지면서 (1년 전에 카이로에서 지정학적 요소에 따라 조정된 누구나가 베를린 시민이다이라는 돌이었습니다만) 그것을 던졌던 손을 곧바로 숨겨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전에 식민지 지배를 행했던 국가들과 함께 관리통치의 수단을 잘 다듬어서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19세기가 아니라 21세기에 살고 있습니다. 명령을 내리는 것은 이제는 귀족계급과 현지 자본가가 아니라 이미 여러분들의 위대한 독재자와 단단하게 결부되어 있는 은행과 전지구적 자본입니다. 발전은 이제, 빈곤 속에서 초라한 자립을 강요당했던 국민과 국가의 고통스러운 노동에 의한 야만적인 축적이 아니라, 사회적 협동을 행하는 다중의 생산물인 것입니다. 해방되어야 하는 것은 사회적 협동과 공통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이 아랍혁명은당신이 말했듯이정치적 혁명 이상으로, 무엇보다도 사회적 혁명입니다. 우리들은 독재자뿐만 아니라 어떤 주인도 바라지 않습니다. 아랍의 젊은이들인 다중이 품고 있는 커다란 희망은, 주인을 바꾸는 것이 아닌 주인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서방 국가들의 군사개입은 요컨대 이 희망을 방해하고, 정치 상황 불안을 조성하고, 사람들을 새로운 주인과 그 공모자를 향하게 하고, 민주주의 세력과 우리들 운동의 공통적인 것을 유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되지 않으면 근대적인 세속의 제국적세력이 기존의 식민지주의적 주인을, 과격파, 종교적 원리주의자, 그리고 독재자를 다시 귀환시키겠지요. 장대한 전략이 리비아에 대한 개입과 더불어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A, 우리에게는 이 방해의 시도, 즉 제국적 반작용은 이미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 해결불가능한 위기의 시대, 해저의 플레이트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세력도 요동하는 시대에, 지배자인 다국적기업의 주인들은 이제는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아랍혁명의 관리통제를 어떻게 조직할지 통일적인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버둥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터키와 독일은 나토(NATO) 길을 잃게 만들고, 이스라엘은 오바마의 노선을 뒤집고, (대서양에서 페르시아만까지의) 군주국가는 군주국가답게 행동하여 프랑스공화국에게 즉각적인 억압장치를 취하게 하고, 알제리군은 스탈린도 부러워할 방식으로 폭력을 계속해서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랍혁명은 지속되고 있습니다모나코와 알제리의 재를 불어 날려 버리고, 튀니지로 숨을 돌리고, 이집트에서는 이미 괴로워하고 번민하며 (거기서는 운동을 분쇄하기 위해 군대와 무슬림형제단이 손을 잡았다) 요르단과 시리아에서 투쟁하고, 바레인과 예멘에서는 압살당해 인터넷으로 도주하여 페르시아만 연안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그 한편으로 전지구적 다자주의의 새로운 전망 속에는, 아직 아랍혁명의 장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조락(凋落)’으로부터 생겨난 전지구적 지정학적 재편 속에서, 최종적으로 나타난 것은 라틴아메리카였습니다. 그런데 군주의 고정수입 대신에 프롤레타리아의 투쟁과 임금인상 요구, 다중의 자유로운 재생산이라는 독립변수가 있을 때에, 아랍의 석유공급자들을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당신은 이 혁명이 유럽을 각성시켜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도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나아가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새로운 노동력이 그 공간에서 활동할 때, 지중해 남쪽 해안의 토지와 북쪽 해안의 토지는 아랍의 젊은이들에게도 유럽의 젊은이들에게도 공유된다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이 운동은 제국과 독재자에 대한 투쟁의 일부이며, 아랍혁명으로 조직되는 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라고도 덧붙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동의합니다. 당신이 장대한 메시나 해협대교를 매우 칭찬하고, 시칠리아와 튀니지를 연결하는 터널에 대하여 열렬히 말할 때. 그리하여 쌍방향적인 왕래가 용이하게 되어,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모든 내셔널리즘과 주인들에 대한 건강한 증오를 서로 전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들이 있는 곳에서 평화주의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당신에게 전했을 때, (코소보와 이라크전쟁에 반대했을 때와 비교하면 매우 작은 운동이었습니다만) 당신은 미소로웃어넘겼다고 하지 않는다면답했습니다. 인도주의적 말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지금, 평화주의자들은 정말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노동시장을 확대하고, 재생산의 새로운 공평한 질서를 고안하는 것이며, 노동 포스트에서 석유의 지불을 하는 것이다 라고. 따라서 평화주의는 당신들의 정책을 지원하고, 아랍사회혁명에 물질적으로 기여하는 것을 통해서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걸려 있는 것은 미래의 비축, 지중해를 횡단하는 노동의 조직화와 분담, 에너지, 막대한 자금, 그리고 아마 세계 권력의 주요한 부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그런 문제들을 회피한다면리비아 전쟁은 장기화되어 광신적인 것으로 되며, 아랍의 다른 국민을 끌어들이게 되어 최종적으로는 오직 폐허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리비아에도 서방 국가들에도, 확실히 승자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일방주의 시대 이후, 이 격동의 시대, 미국과 유럽의 제국적 정책이 조락하는 가운데, 그리고 나토NATO가 약체화되는 가운데 유일한 출구는 다시 한 번 계급투쟁을 새롭게 요동케 하는 것입니다아랍 노동자와 유럽 노동자를 한 데 합쳐. 경계를 돌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당신도 말했듯이, 개량주의적 좌파를 책임의 무게와 배신의 수치심으로 짓밟는 일이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부의 토대로서의 공통적인 것을 확인하면서 국경을 횡단하고, 생산방법의 형태를 변혁하는 정치프로그램을 급히 추진해야 합니다.


Posted by 붉은입술
읽기讀書/기사2010/10/18 00:54

너무 일찍 알아버린 20대, 그들이 냉소적인 이유는…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엄기호 지음/푸른숲 발행ㆍ266쪽ㆍ1만3,000원

김지원기자 eddie@hk.co.kr

지난 3월 고려대 학생 김예슬씨가 교정에 '대학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한 사건은 우리 사회에 적지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쓸모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대학을 떠난다는 그의 선언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고, 혹은 박수를 보냈고, 대학 교육의 현실에 대한 토론과 논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엄기호씨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 따르면 '김예슬 선언'을 열성적으로 응원한 것은 현재 대학생들을 불신하는 386세대였으며, 20대들은 오히려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이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도 고려대 다녔으면 너처럼 할 수 있겠다 하고 생각했어요. 덕성여대 길혜미 선언문. 아무도 관심 안가져줬을 것 같아요."(책에 실린 한 여대생의 말)

저자 엄씨는 이런 반응을 "개인의 행동을 개인적인 결단으로 순수하게 바라보기에는 사회가 철저하게 권력관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20대들이 너무 일찍 간파해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대학 서열 체제에서 대다수의 20대는 이미 바깥으로 내쳐진 존재들이기에 체제로부터 탈주할 바깥도 없으며, 그래서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의 편입을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사회학과 문화학을 전공한 인문학자인 저자가 2년 간 덕성여대와 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교양 강의를 진행하며 학생들과 주고받은 대화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A4 용지 5,000장이 넘는 분량의 리포트들을 추려내고 정리했다는 책 속에는 정치, 교육에서부터 가족, 연애, 돈과 소비, 다이어트 문제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20대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그들은 뭘 해도 내 삶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에 냉소하고, 억압과 폭력으로 가득한 교육을 불신하며, 경제력을 담보로 하는 연애에 피곤해한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돈이 없으면 자유를 빼앗긴다며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88만원 세대' '루저' '잉여' 등으로 불리는 20대. 하지만 저자는 "이들은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전혀 다르게 경험하고 판단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며 기존의 논리와 언어에 기대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또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자고 말한다. "이들의 거칠고 정리되지 않고 울퉁불퉁한 목소리를 우리가 진지하고 꼼꼼하게 듣는 훈련이 되어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요청한다."

Posted by 붉은입술
읽기讀書/기사2010/10/09 01:44
“민주화된 한국엔 미래의 대안인 多衆이 싹트고 있다”
‘마르크스 마지막 후계자’ 안토니오 네그리가 본 사회변화

“1970~80년대의 민주화나 몇 년 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은 계급이나 직업, 성별이라는 집단적 구분이 불가능한 ‘다중’이라는 현상이 가장 잘 나타나는 국가입니다.” ‘마르크스의 마지막 후계자’ ‘현존하는 가장 급진적인 학자이자 투사’로 불리는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78)는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과거에 일궈낸 민주화와 현재의 시민운동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 2000년대 이후 세계적 화제의 중심에 선 ‘지성인의 지성’으로 꼽히는 네그리가 한국 언론과 직접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다.

▲ ‘제국’과 ‘다중’이라는 저작을 통해 국내에서도 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안토니오 네그리는 자신이 제시한 ‘다중’ 개념이 가장 잘 나타나는 국가로 한국을 꼽으며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줬다.

몸짓은 정열적이었고, 표현은 거침이 없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당대의 대학자는 자신이 ‘투사’라는 사실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는 듯했다. 순간순간 운동권 대학생을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지난달 23일 ‘제국’ ‘다중’에 이은 필생의 역작 ‘제국 3부작’의 마지막편 ‘공동체’의 이탈리아어판 출간 행사를 가질 정도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는 그다.

네그리는 “안경을 쓰고 보는 것보다 안경을 벗고 보는 것이 더 잘 보인다.”고 했다. “세상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만들어서 씌워 놓은 안경을 벗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제국 3부작’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 바로 ‘제국이 만들어낸 안경’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바꾸자는 것이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프랑스 망명시절에 만난 지인들이 많다.”면서 “훌륭히 민주주의를 일궈내고, 제국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미래의 대안인 다중이 싹트고 있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아직까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는 그는 “내년 4월 일본 방문 일정이 잡혀 있는데, 가능하다면 한국도 찾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어판 서문을 별도로 쓸 정도로 한국 정치상황에 관심이 많은데.

-1980~90년대 프랑스 망명 시절에 한국인 제자들이 꽤 있었다. 상당수가 (동백림 사건 등)군사독재 아래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고초를 겪다가 망명한 사람들이라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대중들이 밑으로부터 만들어낸 한국의 민주화는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한국은 민주주의라는 기반 자체가 서구처럼 수백 년 이상 쌓이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훌륭히 해냈다.

→2008년 한국에서 일어난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 당시 많은 학자들이 당신의 책 ‘다중’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중은 독자적이면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것이다. 다중 속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해관계가 합쳐지는 것이다. 대중은 시류에 따라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반면 민중은 혁명성을 가진 피지배계급의 의미가 강하지만 지금은 사회 전복과 같은 동일한 목표를 찾기 힘들다. 다중의 구성원 간에는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문화, 인종, 직업 등이 모두 다르다. 심지어 직업의 유무조차도 중요치 않은 만큼 과거처럼 노동자 계급이라는 일관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어떤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중은 함께 모여 행동을 하지만 단일한 집단으로 묶는 전체주의적 환원은 없다. 한국의 촛불시위도 결국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합쳐져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난 것 아닌가. 그것이 바로 다중이다.

→그렇다면 다중은 대체 언제 일어나는가.

-파리에 1990년대 중반 지하철 승무원들이 대규모 파업을 일으켰다. 그런데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파리 안팎에서 동조하는 시위를 일으키고, 연대해서 뜻을 관철시키려고 했다. 처음에는 조그맣고 그들 사이에서 끝날 일이지만 결국에는 다중이 모이는 결과를 초래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여성들의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들의 뜻을 모을 수도 있고 동성애자 운동, 환경생태운동, 독립미디어운동 등이 모두 다중이 일어나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는 사례들이다.

→당신과 제자인 마이클 하트 교수가 쓴 ‘제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 구조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큰 논란을 제공했다.

-처음 책을 썼을 때 많은 사람들이 왜 미국을 나쁘게 보느냐고 물었다. 그러다 2001년 9·11테러가 벌어지면서 사람들이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책에서 테러를 예언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제국주의가 사라진 이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면서 미국이 군사·경제·문화적 힘을 내세워 시도하기 시작한 ‘제국화’가 세계에 더 많은 불안요소들을 던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어떻게 나타나느냐의 문제일 뿐 구조적으로 이미 그 전에 미국이 시도하던 제국화의 결과가 표출될 시점에 도달해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무기는 월등한 군사력·달러·언어(영어) 등 세 가지였다. 이 셋 모두 과거처럼 절대적이지 않은데, 제국화가 계속 진행될 수 있겠나. 그런데 중국이나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라틴 아메리카 등에서는 여전히 미국을 벤치마킹한 제국화가 시도되고 있다. 제국화가 계속 진행되면 결국 문제가 되는 힘 자체는 변하지 않고 누가 힘을 발휘하느냐 하는 구성요소만 바뀌게 된다. 배타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질서를 만들려고 하는 시도는 다 마찬가지다.

→제국화가 실질적으로 세계인들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자본주의식 민주주의를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었다. 현 상황을 보자. 하루에 8시간 일하던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일하고 있다. 당연히 가족 간의 관계나 생활의 질은 더 떨어진다. 경제위기는 점차 주기가 짧아지고, 이 때문에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조차 뭔지 모를 수많은 두려움에 시달린다.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막연한 두려움은 사람들에게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만 키워줄 뿐이다.

→‘제국’에서 세계적인 현상을 분석했고 ‘다중’을 통해 대안을 찾고자 했다. 세 번째 책이자 시리즈의 마지막인 ‘공동체’는 어떤 의미인가.

-이번에 이탈리아어판을 출간하면서 약간 마찰이 있었다. 미국판(2009년 출간)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커뮨웰스’는 ‘공동체의 가치’, 즉 물질적인 의미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탈리아어판에는 ‘공동체’라는 구체적이지 않은 개념만 담은 ‘커뮤니’를 사용했다. 공동체는 딱 잘라서 말할 수 있는 컨셉트는 아니다. 공동체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고, 관계를 맺는 것으로 나타난다. 미셸 푸코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진정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우리의 일 그 자체와 다르지 않다. 일을 하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이런 공동체적 관계는 궁극적으로는 법조차 필요없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나라에서 법으로 정해서 사회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스스로 정리를 하고 사회를 일구어 나가는 것이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이다.

→당신은 사회구성원들에 대해 ‘하층민’ ‘가난하고 없는 자’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그들의 힘을 사회 변화의 원동력으로 보고 있는데.

-하층민은 분명한 힘이 있다. 과거 역사를 보더라도 하층민의 지혜가 세상을 바꿔왔다. 지혜는 돈이나 배터리처럼 닳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층민은 항상 사회에 반응한다. 마르크스, 무솔리니, 히틀러 등 누군가가 사회를 변화시키고 뒤집으려 할 때마다 하층민들의 힘이 저항의 원동력이 됐다. 다만,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그 힘에 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하층민이 발휘하는 저항의 힘이 누르는 힘보다 약했다면 히틀러나 무솔리니는 왕이 됐을 것이다.

→제국 3부작에서는 당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민주주의’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끊임없이 변한다. 토머스 제퍼슨이 ‘법은 10년마다 바꾸는 것이 좋다.’라는 얘기를 했다.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사회는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궁극적인 민주주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계속 변하는 것이다.

→제국 3부작을 제자인 마이클 하트 미국 듀크대 교수와 함께 썼다. 사상을 연구하고 집대성하는 일을 모두 함께 했는데, 동지가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하트와 내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다. 단지 한 사람은 미국에서, 한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감독인 당신의 딸 안나 네그리는 자서전에서 ‘아버지가 유명한 것이 너무 싫었다.’고 썼다. 넬슨 만델라나 당신처럼 투사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힘든 일이었을 텐데.

-내가 망명을 하거나 투옥생활을 할 때 가족들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딸 역시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었겠지만 나한테 항상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해 주곤 한다. 나 역시 마음 가장 중요한 곳에서 가족을 언제나 잊지 않았다.

글 사진 베니스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지성인의 지성… 현존 최고의 급진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 공산당처럼 ‘당’으로 대표되는 조직보다 일반 대중의 투쟁이 사회 발전을 주도한다는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대표 학자다. 현존하는 가장 급진적인 정치사상가로 꼽힌다. 1933년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후반 자율성, 자주성을 강조한 ‘아우토노미아’ 운동을 창시하고 이탈리아 비의회 좌파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70년대 말 정치범으로 구속됐고, 1983년 급진당 의원으로 당선돼 사면된 뒤 프랑스로 망명했다. 미셸 푸코, 들뢰즈, 가타리 등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교분을 쌓으며 지배 권력에 대항하는 대중의 힘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켜 나갔다. 2000년 발간된 ‘제국’은 국가와 국적, 국경을 초월한 전 지구적 시스템이 과거 제국주의 대신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04년에는 후속작인 ‘다중’을 통해 제국에 대항하는 근원적인 힘을 제시했다. 예술과 다중, 전복적 스피노자, 혁명의 시간, 굿바이 미스터 사회주의 등 50여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2010-10-09  2면
Posted by 붉은입술